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
처음으로 미하마 코우지를 만났을 때는 눈이 무척이나 많이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하얗게 쌓이는 눈만큼 기다림이 길어지자 처음으로 히로는 낯선 사람들의 앞에서 긴장이 되었지만 하품을 했다. 그 전날 설레어 잠이 안 와 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울 만큼 히로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잠길 것 같았지만, 묘한 긴장감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창가에 보이는 눈이 조금 많이 쌓였을 때 쯤, 옷에 걸려 있는 눈을 털며 들어오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한 소년과는 오랫동안 눈을 마주쳤다. 9 살, 하야미 히로가 미하마 코우지를 만난 순간이었다.
히로는 눈을 싫어했다. 자신이 버림 받았던 날에 그렇게 눈이 왔다고 보육원에서 말했다. 서럽게 우는 갓난 아이를 보육원 앞에서 거두게 된 원장은 아이가 품에 지니고 있던 편지를 읽고 분했다. 이 아이는 제가 키울 수 없으니 부탁드립니다. 짤막한 글씨에는 절박함이 느껴질 만큼 처절했다. 추운 겨울, 그렇게 히로는 보육원에 오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제일 긴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그를 후원을 자처하는 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형식적인 말들이 오갔다. 제가 생각했던 아이의 상태는 괜찮네요. 좋아요, 그를 후원하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지만. 히로는 조건이라는 말에 몸에 바짝 긴장을 한 채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제 아들 녀석이 낯을 많이 가려서 우리에게도 말을 걸지 않거든요. 그저 이 아이에게 말동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히로를…?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두 아이의 눈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애석하게도 먼저 눈을 돌려버린 건, 코우지 쪽이었다.
“옆에는 코우지 방이니까, 너희 둘이 얼른 친해졌으면 좋겠다.”
코우지의 목소리를 못 들은 지, 벌써 2년이 지났거든. 문이 닫히자 홀로 남겨진 히로는 멍하니 방을 둘러봤다. 처음으로 자신의 공간이 생긴 거에 대해 조금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보육원에서는 이런 공간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당연하게도 '하야미 히로'의 것은 보육원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방에서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쁨도 잠시, 노크 소리에 깨져버렸다. 방문을 열어보니 그 곳에는 코우지가 서 있었다.
“아, 안녕.”
오늘 두 사람은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 일찍 보육원에 히로의 짐을 가지러 온 코우지와 인사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히로는 멍청하게도 다시 인사를 건넸다. 순간 당황한 코우지의 얼굴에 히로 또한 당황한 것 같았다. 그리고 침묵을 깬 코우지가 손을 뻗은 곳에는 침대가 있었다.
“침대가 왜?”
코우지가 덥썩 히로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서로의 숨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코우지가 히로의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 내렸다. 아무래도 피곤할 것 같으니 일찍 자라는 것 같았다. 다정한 손길에 히로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찼다. 아무래도 코우지는 히로가 온 것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말은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놓치기 싫은 것처럼 손을 맞잡고 있었다.
- 히로의 생일은 언제야?
- 히로는 무엇을 가장 좋아해?
- 히로.
- 하야미 히로.
코우지를 위한 공책이 히로의 관한 내용들로 두 권을 넘어가고 있었다. 코우지는 생각보다 히로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코우지가 자신의 방에 있을 때보다, 히로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필요 이상으로 히로는 코우지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히로는 이런 관심이 낯설었다. 보육원에서는 항상 누군가에게 배려를 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어서 보육원에 들어오는 큰 선물보다는 작은 선물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히로는 어느새 책상에 엎드려 깊게 잠들어 있는 코우지를 쳐다봤다. 이 행복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그마한 소년의 바람은 공기가 되어 흩어졌다.
“뭐 때문에 화가 난 건지 말해주면 안 돼?”
두 사람이 항상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것들이 오해를 낳듯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싸우는 날도 그랬다. 그 날은 처음으로 코우지가 히로에게 화를 낸 날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히로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처음 봤고, 처음 보는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심술이 끝까지 난 코우지는 히로를 처음으로 세게 밀쳤고, 손바닥에는 아스팔트에 긁힌 상처가 생겼다. 굳게 닫힌 코우지의 방에서 다친 손으로 문을 치니 당연히 손바닥에 줄줄 피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아픔 때문에 히로가 행동을 멈췄지만, 안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보다 못한 코우지의 유모가 구급상자를 가지고 와서 손바닥을 치료할 때 쯤에 문이 열렸다.
“코우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코우지의 눈은 히로의 손바닥에 향했다. 오늘은 코우지 도련님이 잘못했어요. 그러니 히로에게 사과를 하세요. 딱 잘라서 말하는 유모의 말에 코우지는 얼굴을 푹 숙였다. 그리고 다급하게 스케치북과 펜을 가져온 그가 쓴 말은 '히로도 잘못한 걸. 하지만 손바닥을 그렇게 만든 건 정말 미안해.' 였다.
- 그리고 나는 히로가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는 게 싫어.
- 히로의 친구는 나 뿐이었으면 좋겠어.
코우지의 글씨에는 단호함이 써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히로는 다시는 코우지의 화를 돋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단호한 얼굴에는 소년의 질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기타처럼 말이다. 코우지는 히로에게도 그 기타를 만지게 하지 않았다. 소년에게 가장 소중한 것 중에 기타가 포함 되어 있는 만큼.
“코우지는 기타를 칠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것 같아.”
- 그렇진 않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
거침없는 코우지의 말에 히로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 찼다. 코우지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집에 보냈고, 그를 달랜 것은 기타였다. 그리고 히로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이 있지 않은 시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코우지의 부모는 히로를 데려온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곳에 있던 것처럼 히로는 미하마의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 * *
“코우지, 메리 크리스마스!”
- 메리 크리스마스, 히로.
히로가 이곳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렸다. 밖에서 얼마나 뛰어 놀았던지, 새빨간 볼이 그 증거였다. 장갑을 끼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이 눈사람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손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두 사람이 만든 눈사람은 거대했다. 히로의 장갑과 코우지의 목도리를 두른 눈사람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코우지의 차가운 손이 히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즐거운 캐롤 음악이 나오고 있는 라디오에선 몇 년 만에 눈이 같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라며 축하했다. 꼭,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DJ의 말에 맞잡은 코우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란히 옆자리에 앉게 된 두 사람은 접착제라도 붙은 듯이 손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먹는데 불편하지 않겠어?”
- 괜찮아요.
“코우지 말고, 히로 말이야.”
“…저, 저도 괜찮아요.”
‘코우지를 도쿄로 보낼 생각이야.’
‘…그 말, 진심이에요?’
‘일단, 코우지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말했으니까. 더 좋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지만 히로는요?’
달칵.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두 사람이 문을 다시 열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불이 켜진 화장실에서 고사리만한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숨죽여 울고있는 소년은 다름이 아닌 히로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조금 붉었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였으니까.
잠자리에 들 시간. 크리스마스가 이제 몇 시간이 남지 않았을 때, 히로의 방문이 열렸다. 말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사람이 코우지인 것이 뻔했지만, 히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숨죽여 울고 있었다. 코우지가 이불을 들춰내자, 히로의 얼굴을 뒤덮은 눈물을 발견했다.
“코우지.”
- 갑자기 왜 울어.
“나, 나 안 울었어.”
거짓말 치지 마. 네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차 있는데. 코우지가 단호하게 적은 말에 히로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코우지랑 보낸 크리스마스가 정말 정말, 정말 좋아서. 그래서 울었어. 손으로 눈물에 젖은 눈가를 연신 비벼보지만 뚝뚝 서러움이 떨어져 내렸다. 싫어, 코우지. 너와 헤어지는 거, 정말 싫단 말이야. 얼마나 울었는지 이불보에 젖은 눈물을 짜면 바닥을 적실 것만 같았다.
- 히로.
“나 정말 행복해, 코우지.”
며칠이 지나 히로가 울었던 이유를 알게 된 코우지는 처음으로 식탁에서 주먹을 치고 일어났다. 그것도 자신 혼자만 떠나게 된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히로랑 같이 가지 않으면 안 가요. 스케치북에 써져있는 글씨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화가 난 것 같았다. 히로는 같이 갈 수 없어, 코우지. 청천벽력처럼 단호한 두 사람의 말에 코우지는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 사이에 낀 히로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그렇게 멀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어, 언제든 보러 갈 수도 있ㄱ….”
- 히로는 나랑 같이 가고 싶지 않아?
도쿄는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응? 히로는 대답하는 것을 미뤘다. 코우지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미하마의 두 사람이 히로를 불렀다. 히로, 정말 도쿄로 올라갈 거니?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말에는 가시가 잔뜩 돋은 느낌이었다. 자기 자신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 난 히로랑 같이 있고 싶어.
“있잖아, 오십 밤만 지새면 다시 만날 수 있대.”
히로가 손바닥을 펼쳐도 오십이라는 숫자를 표현할 수 없었다. 잔뜩 골이 난 코우지의 얼굴은 펴질 리가 없었다. 히로는 내가 싫어? 그 단어에는 마법이 걸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히로는 애써 웃으며 당연히 나는 코우지가 좋지. 라고 말했지만, 목구멍이 조금 아팠다. 아주 큰 이별을 앞에 둔 두 사람의 타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코우지가 떠나가는 날, 히로는 심한 감기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 맡에 걸터 앉은 코우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끙끙 앍고 있는 히로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 끝에서는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고, 지독한 감기에 걸린 히로를 제 눈에 담기 바빴다. 그렇게 지켜보기를 몇 분, 코우지를 보채는 말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였다.
꼭, 나중에 데리러 올게.
코우지는 자고 있는 히로의 손등에 입술을 맞췄다. 조금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너,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 어떻게 지냈냐?”
어떻게 지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은 무척이나 빨리 지나갔다. 히로는 성인이 되었어도 코우지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코우지가 도쿄에 가고 난 뒤, 히로는 죽은듯이 살았다. 당연히 코우지의 부모도 도쿄에 올라갔고, 두 사람이 살았던 집에는 네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만 코우지의 옆을 지켰던 유모만이 히로의 가족이 되어주었고 별 탈 없이 잘 살아왔다.
성인이 되고 나서 히로는 미하마의 부모에게 불려 처음으로 도쿄에 올라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우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코우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코우지의 부모도 그의 얘기를 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았다. 아주 가끔씩 유모에게서 코우지의 소식을 들었지만, 그것 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친했던 친구들과 시시콜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밖에서는 하얗게 눈송이들이 내리고 있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오네. 크리스마스가 올 때 쯤에는 코우지가 생각나곤 했다. 히로는 여전하네, 아직 술도 못 마시는 거 보면. 동창들의 말에 애써 웃으며 하이볼이 가득 담긴 잔을 홀짝였다. 아주 가끔, 이 날에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코우지를 상상하곤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분 좋게 취한 히로는 동창들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코우지의 부모님이 마련해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는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이 눈이 그쳐 있었고, 천천히 녹아가는 눈을 밟아가며 걷기를 반복하던 그는 편의점에 잠깐 들려 두 손 가득 짐을 채웠다. 맨션에 다다랐을 때, 맨션 앞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에 가득 담겨져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쯤, 두 손에 들고 있던 짐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안녕, 히로.”
“………코우지?”
처음 듣는 코우지의 목소리는 히로가 상상했던 것보다 그 이상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하는 눈이 바람에 날려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