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아이인 너에게
*
문을 열고 나오는 발끝부터 추운 공기가 확, 하고 몸을 덮쳤다. 찬 겨울 공기는 마스크 안쪽까지 금새 파고든다. 마스크와 모자가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다.
"감사합니다―"
점원의 경쾌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추위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니 팔목 부근에서 종이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코우지가 사 오라고 신신당부 하던 것들, 바닐라 시럽, 우유, 멀티탭, 트리 장식용 별.
트리 장식용 별.
미드타운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그걸 한 번 구경하러 가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을 테니 포기했다. 포기한 것은 트리 보러 가는 것뿐만이 아니다. 당장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일루미네이션도, 전구를 역대 최다로 사용했다더니 방문객 수까지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이라고 했다.
올해 프리즘 킹이 되고 일 년을 온갖 특집 프로그램과 인터뷰 등으로 보냈다. 그건 헐리우드에서 작업한 영화가 평단과 대중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게 된 코우지나, 프리즘쇼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대서특필된 카즈키도 마찬가지라서, 봄부터 활동을 재개했던 오버 더 레인보우는 세 명 모두 일 년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겨울이야, 같은. 그리고 연말 콘서트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 가끔씩 허락되는 휴일은, 그런 명물을 보러가기에는 또 타이밍이 안 맞는 것이다. 차라리 평일이었다면 조금 사람이 적었을까 싶은데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는 주말부터 시작.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내년에도 트리나 일루미네이션은 있을 테니까.」
「응…….」
「……그럼, 대신 히로 집에라도 꾸밀까? 트리 같은 거.」
그렇게 말이 나와서, 코우지가 조립형 트리와 장식품 같은 걸 집에서 가져왔다. 조립하면 사람 키보다 조금 높아지는 트리 위에 반짝거리는 전구와 벨과 크리스마스 챰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마지막으로 비뚤어지거나 떨어지려 하는 것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부엌에서 케이크를 굽던 코우지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을 때는.
「음― 역시 제일 위에 큰 별을 하나 놓는 게 좋을까나.」
「그런가? 지금도 예쁘긴 한데.」
「클래식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트리 탑에 큰 별이 있으면 왠지 트리의 완성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
트리를 손수 장식해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노리즈키 가에 있을 때는 집안의 사용인들이 트리를 만들어 주었다) 코우지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트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고…….
―에 더해서, 왠지 코우지가 원하는 것 같아서 두말없이 사오겠다고 말한 것이긴 했지만. 어차피 집 앞에 늦게까지 하는 잡화점이 있어서 (신주쿠에 산다는 것은 이런 때 편하다) 다녀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돌아가면 코우지의 케이크가 거의 완성되어 있으려나, 라고 생각하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 * *
"다녀왔어―"
라면서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을 가득 채운 달콤한 향기가 코끝으로 밀려들어왔다. 잠깐 나갔다 온 것뿐인데 금새 차가워진 뺨에 와닿는 따뜻한 공기가 기분 좋았다. 신발 끈을 풀어 내리며 부스럭거리는 봉지를 바닥에 놓았다. 달달한 초콜릿 향에 상큼한 과일(베리 류인가?) 향이 섞여 있다. 코우지가 집에서 이런저런 요리를 곧잘 해주는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냄새로 기대감을 부풀려보는 것이 취미처럼 되어 있다.
"어서 와, 히로!"
웃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현관으로 들어서면 장식이 이미 거의 끝난 테이블과 전원을 켜 놓아 전구들이 반짝거리는 트리가 보였다. 코우지가 틀어 놓은 모양인지 크리스마스 캐롤도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와, 언제 이렇게 다 한 거야? 진짜 금방 다녀왔는데."
"후후, 아까 히로가 나가기 전에 이미 음식은 거의 다 됐었어."
익숙한 집이 조금 꾸민 정도로 이렇게 달라 보인다. 방 한 구석에 트리를 놓았을 뿐인데, 테이블에 시트를 깔고 코우지가 커다란 케익을 올려놓았을 뿐인데. 귓가에 들리는 캐롤이 따뜻하다.
"우유, 사 왔지? 이리 줘, 핫 초콜릿 해 줄게."
"아, 으응."
"그리고 별은 저 쪽에, 부탁할게."
"응, 트리 제일 위에…… 응? 트리가…."
우유를 받아 들고 부엌으로 돌아간 코우지를 한 번 보았다가 나는 다시 트리로 눈을 돌렸다. 방금 전 나가기 전에 보았던 것과 확실히 달라져 있다. 무엇이 달라져 있느냐 하면, 달려있지 않았던 작은 상자들이 군데군데 장식처럼 매달려 있다. 분명히 나가기 바로 직전까지 보고 있었으니까 잘못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손바닥 크기의 자그마한 선물 상자들이 장식인 척 열 몇 개 정도― 아니, 정말 장식인가?
"히로, 별 단다고 하지 않았어?"
"아, 코우지. 응, 그런데 이 상자들…"
"자, 어서."
재촉하는 코우지에 일단 별을 꺼내 트리의 가장 위에 얹었다. 발뒤꿈치를 올려야 겨우 쭉 뻗은 손끝에 닿는 트리의 꼭대기에서 별이 반짝 빛났다. 아, 정말 트리의 완성 같다… 그래서 코우지가 고집을 (고집인가?) 부렸구나.
"예쁘다…."
"히로가 별을 사 와 준 덕분이야. 불을 끄면 더 예쁠거야."
그렇게 말하고 코우지가 방의 불을 껐는지 어두워진 방 안에서, 처음 내 손으로 장식해 본 트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이 보잘것없는 방도 이런 트리로 이렇게 반짝거려질 수 있구나.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 들어 눈앞의 별을, 트리를, 전구를, 매달린 선물 상자들을 보고 있으니 코우지가 뒤에서 몸을 안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히로가 별을 사러 갔을 때 말이야, 산타가 왔었어."
"으응?"
"그래서 저 선물들을 매달아놓고 간 거야."
귓가에서 속삭이는 코우지의 목소리가 장난스러웠다. 나는 그 뻔뻔한 거짓말에 웃음을 꾹 참았다. 뱃속이 간질간질 거리는 것 같고, 턱 끝이 코우지의 머리카락으로 간지러운 것도 같고, 내 몸을 꼭 안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코우지의 팔이 생각보다 편안하기도 하고…
"열 몇 개나?"
"응, 히로는 어릴 때부터 쭉 착한 아이였으니까."
"그 산타, 너무 기준이 널널한 거 아니야?"
언제였지, 아마 중등부 시절. 그때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었다. 코우지와 나는 데뷔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별다른 계획이 있지는 않았다. 코우지는 평소대로 엄마와 저녁을 먹을 거라고 했고, 나는 아마 노리즈키 가에서 여는 형식적인 파티에 참가하지 않을까 한다는 말을 했었다.
「산타가 정말 있다면 말이야, 우리를 빨리 데뷔시켜 주는 걸로 선물을 대신해 주면 좋을 텐데.」
「에, 선물은 현물만 되는 거 아니야?」
「그런가? 그치만 어차피 원하는 선물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정말? 히로, 선물을 받은 적이 없어?」
「아니, 있긴 있지만, 항상 원하는 거랑은 달랐다고 할까……. 어렸을 때, 프리즘 쇼를 할 수 있게 스케이트 화를 달라 고 기도하고 자면, 다음날 머리맡에 잡화점의 1000엔 쿠폰 같은 게 있었어. 1000엔으로는 스케이트 화를 살 수 없었어.」
그건 엄마랑 살았을 때의 일. 노리즈키 가에 와서 진 씨가 산타란 건 사실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그 1000엔 쿠폰이 아마도 엄마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 아니었을까 그때 알게 되었다. 스케이트 화는 진 씨가 사 주었다. 그 후로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긴 했지만, 그건 더이상 산타에게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사실 산타에게서 원하는 걸 받은 적이 없어서… 나는 약간 그렇게 생각했어. 선물을 받을 정도로 착하기는 한데, 원하는 걸 받을 정도로는 안 착했던 게 아닐까―하고. 그러니까, 반만 착한 아이?」
그 말을 듣는 코우지의 표정이 너무 울 것 같아져서 나는 얼른 말을 멈추었다. 그런 뜻으로 했던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딱히, 이제 와서 산타라든지 선물이라든지 연연하지 않는데. 하지만 코우지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우리, 곧 데뷔니까, 히로.」
「맞아. 이제 언론 인터뷰라든지, 잡아 놨다고도 진 씨가 이야기했으니까.」
「그 무대가… 히로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말을 하면서야 겨우 웃었던 코우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왜냐면, 그때의 무대는 결코 선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후회해도 변하지 않는 일이지만…. 산타에게 선물을 못 받아도 할 말 없는 아이였으니.
"그렇지 않아, 산타가 꼭 전해달라고 했어. 히로는 어릴 때부터 정말 착한 아이였다고."
귓가에서 속삭이는 코우지의 목소리가 다정하다.
"이제야 줘서 미안하다고도 했어."
아까까지는 코우지의 뻔뻔한 거짓말이 웃겨서 장단을 맞춰주면서 웃음을 꾹 참고 있었는데, 조금…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다섯 살의 히로를 위해 산타가 고른 선물, 일곱 살의 히로를 위해 산타가 준비한 선물, 열 살의 히로를 위해 산타가 놓고 간 선물, 열 세 살의 히로를 위해, 열 다섯 살의 히로를 위해, 올해의 히로를 위해…… 산타가 코우지를 주었다.
"…열어봐도 돼…?"
"그럼, 히로 선물인 걸."
선물을 향해 팔을 뻗자 코우지가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주었다. 나는 얼른 그 팔을 다시 허리에 감았다. 계속 붙어 있고 싶은 기분이라서. (거의 항상 그렇지만.) 코우지가 숨죽여 웃는 것 같았다.
"내가 코우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나이니까, 잘 안고 있어, 코우지."
뻔뻔한 말을 하면서 (하지만 사실이었다) 코우지의 품에 안겨 선물을 하나 하나 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음악이 흐르는 집 안이, 케이크의 달콤한 향이 더해진 이 작은 공간이 트리의 반짝거리는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