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하마 코우지와 어떤 고양이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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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지는 뻐근한 눈을 깜박이며 재생 중이던 음악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대기화면에 떠 있는 날짜는 24일. 정확히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표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내일을 위해 며칠 전부터 분주히 준비했을 테지만 코우지는 내내 다음 주 라이브용 편곡을 위해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물먹은 솜처럼 지쳐 있었다. 삐빅, 단조로운 번호키 소리와 함께 코우지가 귀가했다.
12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캐롤이 울려 퍼졌다. 한 해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겠다는 것처럼 추위 속에서도 거리가 화려해졌다. 12월은 아이돌이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특집 프로그램과 행사가 쏟아졌다. 크리스마스, 각종 연말 프로그램, 새해 라이브. 오버 더 레인보우에게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12월이 되기도 전부터 밀려들어온 스케줄을 선별하고 컨셉을 조정하느라 바빴다. 특히 12월 마지막 주는 하이라이트였다. 크리스마스 특별 공연이 끝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새해맞이 행사가 있었다. 그 때 또 모르는 연예인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무대를 하고, 몇 번째 반복한 것 같은 비슷한 질문의 인터뷰에 대답하고……, 코우지는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졌다. 그런 코우지와 달리 히로는 늘 가운데서 코우지와 카즈키를 다잡았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 특집 녹화를 위해 만났을 때도 “이럴 때 바짝 벌어둬야지.” 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코우지는 그 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거기에 반박할 힘도 남지 않아 하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저녁을 먹지 못해서 간단히 챙겨먹을 생각이었지만 막상 집에 오니 피로가 몰려와 아무래도 좋았다. 코우지는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조금만 누워있을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깜빡, 깜빡, 깜빡.
“――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늪에서 끌려나온 느낌이었다. 피로에 늘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려니 머리가 아팠다. 코우지는 갑자기 잠들어 무거워진 머리를 흔들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찾아 더듬거리던 코우지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히로?”
그리고 머리맡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히로를 발견했다. 잠든 코우지를 내내 지켜보고 있었는지 히로의 머리카락이 코우지의 얼굴 위에서 커튼처럼 흐드러져 있었다. 코우지와 눈이 마주치자 히로는 눈을 휘어 웃었다. 히로의 정수리 양 옆에 달린 부드러운 귀가 까맣게 그늘져 있었다. 귀? 코우지가 당황하기 전에 히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코우지, 일어냐!”
“……히로 고양이 컨셉이야? 언제 들어 왔어?”
코우지는 자는 동안 낮게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히로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자다니, 어지간히 피곤했다 싶었다. 히로는 그런 코우지를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보다가 문가를 가리켰다. 코우지의 집 비밀번호는 히로도 알고 있다. 히로가 마음을 먹으면 오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갑작스러운 히로의 고양이 코스프레였다. 고양이 귀를 빌려온 것도 모자라, 아예 고양이 말투라니. 귀여웠지만 코우지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코우지는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컨셉이 아니라구냐? 큰일 났다냐!”
히로는 코우지의 말에 짐짓 놀란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다만 히로가 말하는 동안 코우지의 눈이 그의 머리 위에 쫑긋 솟은 귀에 고정되어 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히로의 머리카락과 거의 똑같은 카라멜색의 털로 뒤덮인 귀가 바짝 서 있었다. 귀 안쪽은 크림색의 여린 털이 보송보송 솟아 귀여웠다. 촉감이 궁금해서 귀가 있는 쪽으로 손을 올렸더니, 코우지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챈 것인지 히로가 매섭게 코우지의 손을 쳐냈다. 찰싹, 하는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렸다. 히로는 제풀에 놀라 어깨를 크게 움찔거리더니, 코우지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슬쩍 안겼다.
“마, 만지면 안된다냐!”
“……싫으면 말하지.”
코우지는 제지당한 손을 머쓱하게 내려 히로의 허리에 감았다. 아직 몸은 무겁지만 히로의 체향이 훅 끼쳐와 한 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 때 코우지의 시야에 뭔가 가늘고 기다란 것이 보였다. 히로의 엉덩이 뒤에서 나온 꼬리였다. 히로의 허리를 한 바퀴 감고도 남을 것 같은 길이의 꼬리가 침대 위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히로, 꼬리도 달았어? 진짜 같……?”
“―――!!”
꼬리에 손이 닿자 기분 좋게 콧소리를 내며 안겨 있던 히로가 코우지를 확 밀쳐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코우지도 확실히 느꼈다. 손에 닿았던 말캉하고 따뜻한 촉감, 부드러운 털. 그리고 히로의 등 뒤에서 코우지의 침대 시트를 탁탁 거리며 때리고 있는 꼬리는 플라스틱이나 솜뭉치가 아니었다.
“히, 히로 고양이가 됐어?!”
코우지가 히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히로는 코우지를 비추는 갈색 눈을 깜박거리며, 입을 벌렸다.
“내가 그렇다고 했자냐아---!”
억울한 고양이 소리가 잠깐 창밖으로 새어 나갔다.
* * *
히로는 따뜻한 크림 스프를 조심조심 불어먹었다. 입 안으로 한 스푼 떠 넣고 입안에서 음미하듯이 머금고 있다가 넘길 때마다 히로의 머리 위에서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다. 코우지가 우왕자왕 하는 사이 히로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우선 코우지는 시뻘개진 히로를 부엌으로 데리고 나왔다. 마침 저도 출출하던 참이었다. 코우지는 원래 저녁 시간대에 단 것은 먹지 않는 주의였지만, 지금은 혀가 녹을 정도로 단 것이 필요했다. 코우지는 핫초코를 들고 히로의 맞은편에 앉았다. 방송국에서 헤어질 때만 해도 평소의 히로였다. 오히려 자신에게 앞으로 쭉 바쁠 테니 미리미리 체력을 비축해두라고 충고할 정도로 든든했는데, 지금은…… 평소에 먹던 음식을 꺼내주어도 되는지 냉장고 앞에서 한참이나 고민하던 코우지의 앞에서 히로가 보란 듯이 음료수를 꺼내 마셔서, 코우지는 우선 평소처럼 재료를 골랐다. 고양이 귀를 달고, 와카나나 카케루 같은 말투를 쓰고 있지만 자신이 아는 히로인 듯 했다. 아, 스푼을 내려놓고 아주 그릇 채 들어 마신다.
“그……,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알면 코우지한테 왔겠어, ……냐?”
히로의 고양이 말투가 미묘하게 늘어졌다. 코우지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냐, 냐아, 먕, 히로가 내뱉는 말투가 솔직히 말해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히로의 등 뒤에서 의자를 휘감고 있는 꼬리나, 쫑긋거리는 귀는 가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코우지는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새 히로의 접시는 말끔해졌다. 입 근처에 묻은 물기를 아무렇게나 닦으며 히로가 코우지를 보고 웃었다. 맛있어? 하고 입모양으로 물으니 히로가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코우지에게 히로의 식사를 만들어 주는 일은 익숙한 하루 일과였다. 히로가 건강을 챙기지 않는 게 걱정스럽긴 했지만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히로가 겨우 고양이 귀를 달고 있다는 것만으로 어쩐지 코우지는 평소보다 히로가 더 어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짚이는 게 있긴 하다, 냐…….”
코우지가 히로의 몫으로 가져온 핫초코를 손에 쥐면서 히로가 우물쭈물했다. 코우지는 듣고 있으니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지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고양이는 좋겠다- 고 생각했더니, 오늘 일어나니까 이렇게 됐, 다냐…….”
“고양이?”
“으읏, 지난 주 크리스마스 특집 ‘주간 프리즘’ 말이냐!”
“아.”
호로록, 핫초코를 마시던 코우지가 짧게 입을 벌렸다. 오버레만 나간 방송이 아니라 다른 소속의 프리즘 스타들도 몇 팀이 같이 나간 쇼였다. 물론 오버레 중심의 쇼가 됐지만, 프리즘 스타 특집에 가까워서 사적인 질문보다 공통질문이나 스피드 퀴즈 같은 게 많았다. 그러고 보니 기르고 싶은 동물을 물었던 것도 같다. 사실 코우지는 나서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고양이라는 건, 순전히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히로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대답이었을 뿐이었다.
“히로는 그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뭐야, 잊어버리고 있었어?”
“히로가 말라뮤트 같이 커다란 개가 좋다고 했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지.”
코우지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히로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녹화 때는 여태 강아지가 좋다든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든가 하는 히로의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히로의 반응을 보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코우지는 턱을 괴고 은근한 눈빛으로 히로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말라뮤트?”
“그, 그래!”
히로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히로가 핫초코를 한 모금 잔뜩 입에 물었다. 꿀꺽, 히로의 목젖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코우지는 입을 열었다.
“히로, 좀 전부터 ‘―냐’가 사라졌는데…….”
“……! 아, 아냐! 아니냐!!”
코우지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큭큭 웃었다. 으아악, 히로가 낮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히로는 황급히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어 머그컵을 씻었다. 쏟아지는 물 소리 뒤로도 코우지의 웃는 소리는 가려지지 않았다.
“웃지 마, ……냐!”
“큭, 흐흑……. 알았, 어. 그래도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이건 진짜라구!”
코우지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히로의 앞에 섰다. 코우지를 올려다 보는 히로의 눈빛이 당황과 억울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만져도 돼?”
이번에는 먼저 물었다. 히로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지는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히로의 머리 위에 바짝 선 귀에 손을 올렸다. 꼬리를 만졌을 때 같은 온기가 코우지의 손 안을 데웠다. 코우지의 손이 귀 전체를 감싸자 손아귀 안에서 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코우지는 결을 따라 귀를 쓸다가, 가운데 귓바퀴 쪽에서부터 돋아 있는 흰 털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힉.”
안쪽의 여린 살이 있는 쪽을 만지자 히로가 몸을 비틀었다. 코우지는 반사적으로 손을 뗐다.
“아, 미안. 간지럽구나.”
“응…….”
히로는 남아 있는 감각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고개를 털었다. 좌우로 휙휙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정말 고양이 같았다. 코우지는 식탁에서 일어나 히로를 거실의 쇼파로 데려가 앉았다. 12월을 맞아 한참 전에 세워 놓은 트리가 그럴듯하게 집안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히로는 익숙하게 코우지의 다리 사이에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후후, 그럼 산타가 히로의 소원을 들어준 거네.”
“소원 같은 거 아니었거든.”
“그렇지만 내가 히로를 고양이처럼 돌봐줬으면 싶었던 거잖아?”
“…….”
히로는 거기까지는 부정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히로의 꼬리뼈에서 돋아난 꼬리가 코우지의 허벅지를 툭툭 때렸다. 왠지 히로의 체온이 평소보다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코우지는 히로를 꽉 끌어안았다.
“음……, 내가 히로의 집사가 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완전 억지…….”
“아니면 내일 잘생긴 말라뮤트를 선물로 받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면서 코우지는 다시 웃었다. 히로의 새로 돋아난 귀에 보란 듯이 바람을 후, 불어넣자 히로가 간지럽다며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다. 히로는 씰룩거리는 입가를 꾹 누르면서 코우지의 허벅지 위에 마주 본 자세로 돌아앉았다. 코우지가 쭉 뻗은 히로의 팔을 자신의 목뒤로 둘렀다. 히로는 뻔뻔하게 저를 올려다 보는 코우지를 밉지 않게 흘겨봤다.
“자, 그럼 집사. 책임지고 돌봐 줘.”
“네, 까다로운 주인님이 만족하실 수 있게 대접해드리죠.”
코우지가 히로의 코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을 감은 히로의 여유로운 모습이 정말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하던 코우지는 “아,” 깜빡 잊었던 중요한 말을 덧붙였다.
“히로님도 ‘―냐’ 서비스를 잊지 말아주세요. 그거 좋았거든.”
“악, 코우지!”
히로와 코우지가 투닥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성탄이 성큼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