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꿈의 라이브 프리즘 스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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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잡혔다는, 하지만 꼭 나가야 한다는 스케줄을 처리하고 나니 벌써 7시였다. 상냥한 자신의 연인은 분명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기다리리라. 히로는 바로 코우지와 동거하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연말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혀 초조해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마음이 급해도 제가 운전을 시작할 때 코우지가 신신당부했던 걸 생각하면 속도를 올릴 수도 없어 더 답답했다.
"코우지! 늦어서 미안해!"
차도 막혀 더 늦어진 것 같아, 히로는 시계도 보지 않고 말하는 동시에 구두를 벗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협찬으로 받았다가, 신어줬으면 좋겠다며 디자이너로부터 그대로 선물 받은 구두를 벗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외투도 적당히 벗어 소파에 걸쳐 놓았다. 일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오늘도 하루가 끝났구나.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의식처럼 신발장 건너편 선반에 놓인 두 사람만의 사진을 보자 히로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하는, 행복한 제집으로.
얼른 제 다정한 연인이 보고 싶어 히로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엌에 있는 모습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제 연인이 보인다. 편안한 맨투맨에 금방이라도 카페에 있을 것 같은 깔끔한 검은 앞치마 차림. 세 명의 상징인 목걸이도 언제나처럼 하고 있다. 히로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한발 다가온 코우지가 입을 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야미 히로 님."
코우지가 왼손을 등 뒤로 하곤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다 굽히며 가볍게 허릴 숙여 인사했다. 귀족처럼 정중한 인사였지만, 동작과는 달리 장난스러운 목소리. 코우지의 목소리를 들은 히로의 얼굴이 화닥닥 달아오른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히로는 옛날 생각이 나선 작게 항의했지만, 코우지의 올리브 색의 눈과 마주하자 스르륵 녹아내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코우지는 항상 그랬듯 다정하게 웃으며 히로를 맞아주었다. 늘 하던 것처럼 상냥함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말을 걸며.
"어서 와, 히로."
"응. 기다리게 해서 미안, 코우지.."
"어쩔 수 없었는걸. 괜찮아, 히로."
히로는 제가 그리 답해도 여전히 미안한지 풀이 죽어 있다. 붉은 기가 조금 남은 얼굴이 조금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뭘 그렇게 자꾸 미안해해, 히로는. 코우지는 급하게 들어오느라 히로가 미처 벗지 못한 머플러를 부드러운 손짓으로 풀어 빈 의자에 걸쳐두곤 히로를 향해 웃었다. 히로는 뛰어왔는지 조금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서도 줄곧 미안한 얼굴로 제 눈치를 살피듯 힐끔거리고 있다. 귀여워, 히로. 그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식사는 했을 것 같아서 우선 디저트를 준비했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역시 부끄러워할 것 같아, 코우지는 티를 내는 대신 통나무 모양의 케이크가 담긴 접시 옆에 커트러리를 하나하나 놓으며 모르는 척 말했다. 크리스마스니까 준비해 봤는데 괜찮을까.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코우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를 뒤로 물려선 히로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것보다…."
"자, 케이크.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 기념이야. 히로, 아-"
포크로 케이크를 조금 뜨며 말하자 무언가 말하려던 히로가 입을 벌렸다. 입을 벌리고 저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모양이 퍽 익숙해 보인다. 처음에는, 제가 먹여주려 하자 뭘 하느냐는 듯한 눈으로 조금 어색하게 바라봤었는데. 빈집이 익숙하고 차갑게 식은 식사에 익숙해져 있던 히로가 이렇게 되었단 사실이 코우지는 못내 기뻤다. 사람의 온기,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애정, 그런 사람이 만드는 음식. 선물. 코우지는 그런 것들에 히로를 길들이고 싶었다. 코우지가 보는 히로는 아무리 사랑받아도 모자랄 정도로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으므로.
금세 오물거리며 케이크를 삼킨 히로가 얌전히 저를 바라보자, 코우지는 포크로 케이크를 다시 조금 잘랐다. 표정이 맛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제게 향한 히로의 시선이 좋아 포크를 입 가까이 대주지 않았더니 히로가 금세 다가왔다. 아무렇지 않게 앙, 하고 고갤 움직여 먹는 히로를 보고, 코우지는 포크를 쥐었던 손을 놓고 풋 웃음을 터트렸다. 완벽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히로가 몇 시간 늦은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히로."
"응?"
이름을 부르자 바라보는 두 눈 가득 제가 담겨 있다. 활동할 때에는 그렇지 않아도 둘만 있을 때는 부끄러움이 많아 사랑한다는 말은 잘 해주지 않았지만, 이럴 때면 저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는 게 보여 코우지는 자주 히로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신만을 향한 눈동자가, 행복하다는 듯 휘어진 눈꼬리가, 온몸이 저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좋아해, 코우지. 사랑해… 하고. 물론 코우지도 히로가 좋았고, 히로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좋았다.
"크리스마스를 히로와 함께 보내서 좋아. 일이 있어서 카즈키가 함께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단둘이 보낼 수 있는 건 조금 기쁘기도 한걸."
오버 더 레인보우는 물론 정말 소중하지만, 그렇기에 연휴에 하루쯤 떨어져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세 명의 유대관계는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제가 유치원 때부터 보아온 카즈키는 설령 모든 사실을 알아도 기꺼이 보내줄 사람이었다. 히로와 갈등이 있을 때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알겠지만, 하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었던 배려심 깊은 사람이니까.
포크를 오물거리던 히로는 코우지가 아무 말이 없자 무심코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런 때였다. 평소에 풀어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특별한 날'을 핑계삼아 잔뜩 전할 수 있는, 그런 날.
"코우지하고는.. 그때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때?"
"응."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히로가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건 별일이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닮았는지, 남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하는 코우지처럼 히로도 꼭 그랬다. 히로는 모두의 아이돌이었지만 어두운 구석이 있어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잘 털어놓지 않았었으니까. 그런 히로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건 곧 믿는다는 뜻이고 의지한다는 뜻이어서, 코우지는 히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뻤다.
"히로랑 같이 데뷔했던 때네. 나도 히로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거 말고…. 그건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별 의미를 담지 않고 한 말이었는데도, 히로가 갑작스레 사과하자 코우지는 고개를 갸웃하다 곧 깨달았다. 아. 프라이드 때문이라면 괜찮다니까, 히로. 코우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따뜻한 눈으로 히로를 바라보았다. 프라이드의 일은 물론 히로와 제게 커다란 일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히로가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그날 무대에서 진심으로 사과한 것도 제대로 전해졌으니까. 괜찮다고 말해준 것이 몇 번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인데도 히로는 그때마다 지금처럼 얼굴을 붉히고 미안해하고 조금은 부끄러워했다. 지금도 고갤 숙이고선 한 손으로 작은 얼굴을 가릴 듯 덮고 있다. 사랑스러워, 히로. 코우지는 제 연인이 참을 수 없이 귀엽게 느껴져선, 금방이라도 끌어안아 버릴 것 같았다.
"히로, 얼굴 가리지 마. 예쁜 얼굴 보고 싶어. 응?"
그 말에 히로는 천천히 고갤 들었다. 히로는, 결심이라도 하듯 입을 꼭 다물었다 코우지를 한 번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줄곧 전하고 싶던 말이었던 걸까. 말은 끊이지 않았다.
"중학교 때, 말이야."
코우지를 만나서 다행이야. 코우지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해. 조금 떨리는 히로의 목소리가 코우지의 귓가에 닿아온다. 그건 나야말로. 코우지는 가만히 히로와 함께한 순간을 떠올렸다. 빛나는 사람. 히로, 너는 내 태양이었어. 네가 흩날리던 악보를 집어 들고 내게 말을 건 그날부터. 너는 틀림없는 천재라며 나보다 먼저 나를 믿어주었던, 사랑해주었던 그 순간부터 계속.
* * *
히로의 말에 코우지는 미소지을 뿐 아무 대답도 돌려주지 않아, 둘 사이엔 계속 침묵이 흘렀다. 코우지와는 함께 있을 때 늘 익숙하고 편안했는데도, 오늘은 어쩐지 긴장하게 된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걸까. 두 사람 모두 말을 꺼내지 않았다. 히로는, 코우지가 켜 놓은 색색깔의 조명 때문인지 분위기가 평소와 다른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히로는 집으로 오는 길에 수많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았을 때보다, 지금 더 이브를 실감하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보이는 코우지의 얼굴이 반듯한 건 언제나와 같음에도 얼굴이 붉어진다. 말없이 바라보니 문득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코우지를 바라봐도 마주보기만 할 뿐이어서, 히로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언제까지 이럴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히로는 코우지의 얼굴을 좋아했고 계속 봐도 질리지 않았다. 코우지와 눈을 마주하던 히로는 곧 시선을 내려 입술을 보았다. 저 단정한 입매가 무얼 할 수 있는지 히로는 알고 있었다. 입술을 바라보자, 코우지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린 것 같이 느껴진 건 착각일까. 묘한 기분이 들어, 히로는 괜히 들고 있던 포크를 만지작대다 내려놓았다. 조금 전보다 더 참기 힘들어졌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며.
한참이 지났는데도 코우지는 계속 히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건 여전하지만, 아까보다 웃음기가 진해진 듯한 착각이 든다. 왠지 부끄러워져, 히로는 테이블 아래 숨겨진 왼손을 코우지 몰래 꼭 쥐고선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히로가 제게서 시선을 떼자, 코우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 히로. 식사는 했어?"
히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촬영 끝나고 곧바로 왔어. 코우지는?" 그렇게 물었지만, 답은 묻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도 아직이야. 고생한 히로를 위해서 미리 준비해 뒀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차려줄게."
"그것도 좋지만…"
히로는 앉은 자세 그대로, 접시를 한데 모으던 코우지를 올려다본 히로는 다른 거, 하고 코우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응?"
안 되겠어. 코우지가 제대로 되묻기도 전에, 히로는 팔을 뻗어 코우지의 손을 잡고 끌어당겨 고개를 숙이게 했다. 코우지의 놀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히로는 눈을 감고 그대로 코우지에게 입술을 맞댔다. 맞닿은 입술이 조금 건조해 히로는 코우지의 입술을 핥았다. 곧 제 허리께에 닿아오는 코우지의 손이 느껴지고, 이내 코우지의 혀와 제 혀가 뜨겁게 얽혀들었다. 손을 뻗어 코우지가 두른 앞치마의 리본을 잡아당겨 풀어버린 히로는, 점점 달아올라 가는 와중에 가까스로 생각했다. 코우지가 만든 음식, 아직 안 데웠으니 내일 먹어도 되겠지? 미안해, 코우지. 특별한 날이니 용서해줘.
* * *
어슴푸레 날이 밝아올 때까지 재우지 않아서 그랬을까. 많이 피곤했는지, 히로는 시침과 분침이 겹쳐질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게임을 하다 밤을 새운 게 아니면 보통 이 전에는 일어났었는데. 더 자게 해주고 싶지만, 어제 저녁도 먹지 않았으니 꽤 오랜 시간 공복이었다. 연인은 아이돌로서의 몸매관리가 아니면 스스로 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서, 코우지는 함께 있을 때면 지금처럼 자연스레 식사를 챙겨주곤 했다. 코우지는 이불 위로 어깨를 조금 흔들며 다정하게 히로를 불렀다.
"히로, 히로. 일어나. 응?"
"코우지.. 더 잘래…."
"배고플 거야. 밥 먹고 다시 자."
"으응…"
히로는 많이 피곤한지 눈을 감고 대답하다, 일어나려 애쓰듯 몸을 뒤척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코우지가 얼굴 곳곳에 입술을 내려 쪽쪽 키스하자 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다. 졸음기가 남아 풀린 눈이 밤과는 다른 의미로 어여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흐트러진 모습. 나만 볼 수 있는 솔직한 얼굴. 그 모든 것이, 코우지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사랑해, 히로.
"코우지...."
"응, 히로."
"메리 크리스마스.."
상체를 일으킨 바람에 덮고 있던 이불이 내려가 반라가 된 걸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드러난 몸에 드문드문 간밤의 붉은 자욱이 남아있어 코우지는 시선을 빼앗겼다. 그동안 간신히 일어난 히로는 눈을 비비며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것 같은 얼굴로 말해왔지만, 코우지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누구보다 귀엽게 보였다.
히로 덕분에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그다음 크리스마스에도.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해줘. 그런 말을 삼킨 채, 코우지는 히로의 눈가에 살며시 키스하곤 떨어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히로."


